AI를 쓰고 있다는 것과, 잘 쓰고 있다는 것은 다르다
AI를 업무에 도입한 실무자와 관리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도입 자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지금 AI를 쓰는 방식이 정말 효율적인 구조인가?
현재 대부분의 AI 활용 방식을 관찰해 보면,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1단계 — 웹 기반 요청-응답

ChatGPT, Claude 같은 웹 인터페이스에서 콘텐츠를 요청하고, 결과를 복사해서 내 작업 환경에 붙여 넣는 방식이다. AI와 작업 환경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사람이 매번 결과물을 옮기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2단계 — 작업 환경 통합, 그러나 단일 세션

Claude Desktop이나 CLI 도구를 통해 AI가 내 로컬 환경에 직접 접근한다. 파일을 읽고, 코드를 수정하고, 새 파일을 생성할 수 있다. 1단계보다 확실히 강력하지만, 작업 방식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나의 세션 안에서 하나의 작업을 요청하고, 결과를 받고, 다음 작업을 요청하는 순차적 패턴이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 AI에게 일을 시키는 방식은 웹에서 프롬프트를 던지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3단계 — 멀티 세션 병렬 운용

여러 세션을 동시에 열어두고, 세션 간을 오가며 병렬로 작업을 처리한다. 속도는 빨라지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세션 간에 같은 파일을 수정하면 충돌이 발생하고, 작업 범위가 겹치면 중복 작업이 생긴다. 결정적으로, 이 세션들을 오가며 조율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세션이 늘어날수록 사람의 관리 부담이 비례해서 늘어난다. 컴퓨터 공학에서는 이를 콘텍스트 스위칭이라고 하는데, 컴퓨터의 경우 콘텍스트 스위칭에 대한 비용이 상당히 높고,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더 효율적으로 AI 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성진우가 되자: 소환수에게 Skill을 장착시키는 구조
AI 시대에 필요한 마인드를 게임이나 만화속 캐릭터에 비유해 보자.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성진우. 핵심은 같다. 소환수를 불러내고, 각자에게 맞는 능력에 따라 전투를 지휘하는 것이다.
3단계까지의 문제는, 사람이 직접 여러 세션을 띄우고 오가며 작업을 관리한다는 점이다. 이건 소환수 없이 본체가 직접 싸우는 것과 같다. 몸이 하나니 한계가 명확하다.

Agent 를 사용하는 구조에서는 사용자가 실행하는 메인 세션이 상위 Agent가 된다. 해당 메인 Agent가 "X를 하자"라고 명령을 내리면, 하위 SubAgent들이 팀처럼 움직인다. 각 SubAgent는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알아서 분석하고, 필요하면 서로 조율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돌려준다.
여기서 핵심은 SubAgent에게 적절한 Skill을 장착시키는 것이다.
Skill이란 Agent가 특정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와 권한의 묶음이다. 코드를 작성하는 Agent에게는 코드 실행과 파일 시스템 접근 권한을, 문서를 작성하는 Agent에게는 문서 템플릿과 포맷팅 도구를, 테스트를 담당하는 Agent에게는 테스트 프레임워크 실행 권한을 부여하는 식이다. 소환수 하나하나에 직업과 장비를 세팅하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해서는 추가로 정리해 보자. 특히 Claude Code
이것이 단순히 세션 여러 개를 띄우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다. 상위 Agent가 전체 맥락을 보유하고 있다. "프론트엔드 Agent가 이 API를 호출하고 있으니, 백엔드 Agent는 해당 엔드포인트의 스펙을 맞춰라" 같은 조율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이 세션 사이를 오가며 "여기서는 이거 건드리지 마"라고 일일이 지시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여러 AI 도구에선 Agent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메인 세션에서 작업 목표를 정의하면, SubAgent들이 각자 필요한 Skill을 활용해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하고, 결과가 메인 Agent로 합쳐진다.
회사를 예시로 들어본다면, CEO가 "신규 서비스를 론칭하자"라고 하면, 기획팀이 시장 조사를 하고, 개발팀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디자인팀이 UI를 설계한다. CEO가 기획서를 직접 쓰거나 코드를 직접 짜지 않는다. 방향을 제시하고, 각 팀에 적절한 권한과 리소스를 부여하고, 팀이 알아서 회의하고 의사결정해서 결과물을 가져오게 만든다.
AI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 기능을 구현하자"라고 메인 Agent에게 말하면, 메인 Agent가 작업을 분할하고, 각 SubAgent 가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Skill을 사용하여, SubAgent들이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해서 완성된 결과를 돌려주는 구조. 이것이 Multi-Agent 오케스트레이션이고, 내가 생각했을 때는 글을 작성하는 현재 시점에서 AI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이다.
병목 지점을 만들지 마라
이런 구조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AI의 작업 속도는 빠르다. 그런데 이 빠른 파이프라인 중간에 사람이 매번 개입하는 지점이 생기면, 해당 지점이 병목이 된다.
개발 업무를 예로 들어보자. AI가 코드를 작성하면, 사람이 리뷰하고, 피드백을 주고, AI가 수정하고, 다시 사람이 확인한다. 이 루프 자체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AI가 수십 개의 작업을 빠르게 처리해 내는데, 매 결과물마다 사람이 하나하나 들여다봐야 한다면, 사람의 검토 속도가 전체 파이프라인의 처리량을 결정하게 된다. AI를 아무리 잘 구성해도 최종 속도는 사람의 검토 속도에 묶이는 것이다.
그래서 검증 과정조차 Agent나 Skill로 만들어야 한다. 코드 검증이라면 테스트 커버리지, 코드 스타일, 보안 취약점 검사를 수행하는 검증 전용 Agent를 파이프라인 안에 배치한다. 문서 작업이라면 팩트체크, 포맷 검증, 톤 일관성을 확인하는 Skill 을 둔다. 사람이 직접 모든 산출물을 살피는 대신, AI가 정해진 기준에 따라 빠르게 피드백 루프를 돌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 AI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고차원적 판단의 순간이다. 비즈니스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 윤리적 판단이 필요한 것, 여러 전략적 선택지 중 트레이드오프를 감수하고 하나를 고르는 것. 이런 판단은 아직 AI가 단독으로 처리하기 어렵고, 잘못된 결정의 파급 효과가 크다. 여기에 사람의 개입을 집중시키는 것이 전체 파이프라인의 효율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는 방법이다.
요약하면, 루틴적인 검증은 Agent 와 Skill을 사용하여 자동화하고, 사람은 AI가 커버하지 못하는 고차원 의사결정에만 개입한다. 파이프라인 어디에도 불필요한 병목 지점을 만들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마치며: 소환수를 잘 꾸리는 것이 실력이다
AI 시대의 업무 역량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1단계에서는 좋은 프롬프트가 중요하다. 하지만 Multi-Agent 오케스트레이션의 단계로 넘어가면, 핵심 역량이 달라진다. 어떤 작업을 어떤 단위로 분할할 것인가, 각 SubAgent에게 어떤 Skill을 장착시킬 것인가, 파이프라인의 어느 지점에서 검증을 자동화하고 어느 지점에서 사람이 개입할 것인가. 이것을 설계하는 능력이 AI 시대의 핵심 역량이 된다.
네크로맨서가 강한 이유는 본체가 강해서가 아니다. 소환수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능력을 부여하고, 어떤 전략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전투력이 결정된다. AI를 활용하는 방식도 같다. 잘 꾸려진 SubAgent 팀에 적절한 Skill을 장착시키고, 빠른 피드백 루프를 통해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사람은 방향을 정하고, 정말 중요한 갈림길에서만 판단을 내린다.
이것이 AI 시대에 갖춰야 할 CEO의 마인드이고, 동시에 네크로맨서의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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